아프가니스탄 탈레반과 미군 철군의 배경
탈레반은 아랍어로 신학생을 뜻하며 파키스탄 신학교의 졸업생들이 주체가 된 집단으로 파키스탄 정부와 ISI(파키스탄군 통합 정보부)의 지원을 받았다. ISI는 가족, 여자를 모르는 '신을 위해 죽음을 무서워하지 않고 싸우라'는 교육을 받은 많은 젊은 신학생이었다.
초기에 그들은 참신한 모습으로 다가왔었다. 어떤 군벌의 사령관이 소녀를 유괴하자 겨우 30명의 부대원을 이끌고 무사히 구출해 준 사건을 계기로 많은 아프가니스탄인의 지지를 받아 세력을 확대해 나갔다. 지도자 무하마드 오마르 밑에 모인 학생들은 치안을 회복했고 군벌에 의한 횡포를 막는 등 일반 시민이 안심하고 거리를 활보할 수 있도록 하면서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탈레반은 이슬람교를 극단적으로 해석해서 많은 물의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슬람교가 음주를 금지한다는 이유로 카불 시내의 모든 음식점을 뒤져 술병을 깨뜨린다거나 우상숭배 금지라는 명목으로 사진 촬영을 금지하고 영화관의 필름을 불태웠으며 TV 시청도 금지했다. 탈레반의 존재가 세계에 알려지게 된 것은 세계 문화의 위대한 유산인 바미안의 대석불을 파괴한 사건 때문이었다. 카불의 박물관에 전시된 석불도 우상숭배라고 하여 파괴해 버리는 만행을 저질렀고 여성에게 부르카를 입고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하는 등 극단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였다.
탈레반은 순간적으로 아프간 전토의 90%을 지배하고 오사마 빈 라덴의 비호 아래 반미 테러가 기획되었다. 그는 탈레반에 자금을 제공하고 탈레반으로 하여금 반미운동에 앞장을 서도록 선동했는데 이는 아프가니스탄에 미군이 파견되는 배경이 되었다.
미국의 철군, 그리고 아프간을 탈출하는 난민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시작된 아프간 전쟁은 미군이 철군으로 아프가니스탄은 다시 탈레반이 장악하게 되었다. 미군 철수에 대해 아프가니스탄 국민들은 탈레반에 맞서 싸우려는 의지와 사기가 강하지 않고 부정부패한 간부들이 지원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않는 점 등을 이유로 바이든 대통령은 '국익이 없는 곳에 미군을 보내 희생시킬 수 없다'라고 말했다.
현재 탈레반이 집권한 아프간 시민들의 탈출 행렬이 계속되고 있는데 지금까지 피란길에 오른 아프간인은 모두 2백만 명으로 추산된다. 미국이 해외에 있는 미군기지에 아프간 피란민을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있었다. 카타르와 바레인, 독일의 기지가 과밀 상태로 변하면서 미국 내 버지니아주와 인디애나주, 캘리포니아주, 그리고 한국, 일본, 독일, 코소보 이탈리아 내 미군기지가 대상지로 떠오른 것이다.
아랍에미리트와 이란, 영국 등 일부 국가는 아프간 난민 수용 의사를 밝혔지만 빗장을 걸어 잠그는 국가도 늘고 있고 그리스와 터키, 파키스탄은 국경에 장벽과 감시카메라를 설치하는 등 입국 통제 국가도 늘어나고 있다.
난민 수용에 대해 국내 여론은 부정적인 가운데 일부 정치인들이 난민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난민 수용을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지만 지금은 코로나 상황인 데다 종교적인 색채가 강하다는 이유, 그리고 우리나라가 탈레반의 목표가 되는 것이 아니냐라는 우려 섞인 비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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